벨라루스에서 일이 잘못되면 어쩌면 우크라이나에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벨라루스는 유럽의 마지막 남은 독재국가로 알려진 나라입니다.
구공산권 붕괴 후 소련에서 이탈하였으나, 다른 중앙아시아의 구소련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1인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명목상 선거는 유지하고 있으나 사실상 가짜 선거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 루카셴카의 부정선거(사실 이 나라의 부정선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와 그의 독재체제에 대한 불만이 임계점을 넘어 벨라루스 역사상 역대 최대의 집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2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수도 민스크에서 수일간 시위를 지속하고 있는데, 경찰과 행정부 관료들 일부가 시위대 편에 섰습니다. 루카셴카는 구소련 붕괴 이후 처음으로 전면적인 도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아울러 동유럽 국가와 발트 3국 그리고 EU는 역대 최고 강경한 성명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에 루카셴카는 러시아에 군사원조를 요청하였고, 오늘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지원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자, 그런데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푸틴과 루카셴카는 사실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닙니다. 양국간의 "국가연합"이 수차례 논의된 적이 있는데, 루카셴카는 이러한 시도를 항상 막판에 뒤엎었습니다. 벨라루스와 러시아 간 국가연합이 이루어지면 루카셴카는 일국의 수장이 아니라, 러시아의 지방관료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2. 러시아로서도 현재 워딩 수준 이상의 군사개입을 하기 어렵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문제가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전선을 확대하는 것은 너무 위험이 큽니다. 그리고 루카셴카가 폐위(?) 당하고, 벨라루스의 신정권과 교섭하는 게 러시아로서 이득일 수도 있습니다. 벨라루스 시민들이 루카셴카에 반대한다고 해서 그게 꼭 친서방 노선으로 기울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3. 서방으로서도 선뜻 개입하기 어렵습니다. 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핵심 이해관계 (Core Interest) 지역으로, 이곳은 모스크바에서 멀지 않습니다. EU나 NATO가 벨라루스에 영향을 행사하거나 작전을 하는 것은 러시아의 사활적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것으로, 러시아는 반드시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4. 아마, 미국/EU나 러시아로서는 현재 상황을 계속 질질 끌면서 시위 동력이 상실되고 정부가 시위대를 해산할 수 있는 권력을 되찾아오는 시나리오가 가장 윈-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서방세계의 이목이 벨라루스에 완전히 집중되어 있는 이상, EU로서도 벨라루스를 쉽게 방기하기 어려울 것이며, 한편 푸틴도 군사지원을 언급한 이상, 루카셴카가 맥락없이 무너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기에 어려운 상황입니다.
벨라루스에서 일이 잘못되면 어쩌면 우크라이나에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